학교에서는 완벽해 보이던 사람이 알고 보면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걸, 살면서 한 번쯤은 경험해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런 기억이 있어서인지, 《호리미야》를 처음 봤을 때 첫 화부터 이상하게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화려한 학교생활 이면에 가사 노동을 도맡아 하는 호리와, 조용하고 어두운 이미지 뒤에 문신과 피어싱이라는 비밀을 숨긴 미야무라. 두 사람이 서로의 민낯을 목격하면서 거리를 좁혀가는 이야기인데, 정주행하는 내내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작화·연출이 살려낸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
《호리미야》를 보면서 제가 제일 먼저 놀란 건 작화 퀄리티였습니다. 2021년 1월에 CloverWorks에서 제작·방영된 이 작품은 캐릭터의 표정 변화 하나하나를 꽤 세밀하게 담아냈습니다. 특히 미야무라가 호리네 집에 처음 왔을 때, 호리가 "놀랐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미야무라가 어색하게 웃는 작화가 있는데, 그 표정 하나만으로도 이 캐릭터가 얼마나 타인과의 접촉에 서툰 인물인지 전달되더라고요. 말 그대로 얼굴로 연기하는 장면들이 많아서, 대사보다 표정이 먼저 감정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기서 작화(作畵)란 애니메이션에서 각 프레임의 그림을 직접 그려내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배우가 표정 연기를 하듯, 애니메이션에서는 작화가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CloverWorks는 《그날의 너에게》나 《약속의 네버랜드》 등을 작업한 스튜디오로,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작화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MyAnimeList, Horimiya 작품 정보).
연출 면에서도 인상적인 장면이 많았습니다. 호리가 미야무라에게 "미야무라는 내 거니까"라고 말하는 장면은 대사 자체가 충격적이었지만, 그 순간 배경음악이 뚝 끊기면서 정적이 흐르는 연출 덕분에 감정이 두 배로 증폭됐습니다. 이런 음향 연출, 즉 사운드 디자인(Sound Design)은 장면의 감정적 무게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데, 《호리미야》는 이 부분을 꽤 영리하게 활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대사가 많지 않아도 분위기만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장면들이 많아서, 보는 내내 몰입이 자연스럽게 유지됐습니다.
- 표정 변화와 눈빛만으로 인물의 내면을 전달하는 세밀한 작화
- 음악의 완급 조절을 통해 감정적 장면의 밀도를 높이는 사운드 디자인
- 일상적인 배경(집, 교실, 슈퍼마켓)을 감정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배경 미술
서사 압축의 득과 실, 그리고 캐릭터성의 완성도
솔직히 말하면, 애니메이션 《호리미야》의 가장 큰 아쉬움은 서사 압축에 있습니다. 원작 망가는 HERO 작가 기준으로 단행본 16권 분량인데, 이를 13화 안에 담으려다 보니 주요 감정선이 지나치게 빠르게 소비되는 부분이 생겼습니다. 제가 직접 원작을 읽어보고 비교해 봤는데, 특히 이시카와와 요시카와의 관계 변화는 애니메이션에서 거의 겉핥기 수준으로 처리됐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여기서 서사 압축이란, 원작의 시간적 흐름과 에피소드 구성을 줄이거나 재배열하여 제한된 분량 안에 맞추는 각색 방식을 의미합니다. 이 과정에서 캐릭터의 내면 변화나 관계 발전의 개연성이 약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각색(Adaptation)의 품질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 중 하나가 바로 이 서사 압축의 완성도인데, 《호리미야》는 이 부분에서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 작품입니다(출처: AniList, Horimiya 유저 리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주인공의 캐릭터성만큼은 압축 속에서도 뚜렷하게 살아남았다고 생각합니다. 호리가 집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동생 소타를 돌보는 장면과, 미야무라가 처음으로 팔에 새긴 타투를 보여주는 장면은 각 인물의 이중성을 단번에 확립시키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이중성(Duality)이란 한 인물이 서로 다른 두 가지 면모를 동시에 가지는 특성인데, 《호리미야》는 이 이중성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이 사람의 진짜 모습은 뭘까?"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품게 만듭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를 가진 캐릭터는 첫 등장부터 시청자의 관심을 붙드는 힘이 확실히 다릅니다.
후속작인 《호리미야 -piece-》는 본편에서 생략된 에피소드들을 모아 방영한 작품입니다. 제가 직접 보고 비교했을 때, piece 버전은 원작 팬에게는 분명 반가운 보충이었지만 본편과 연결성이 떨어지는 옴니버스 형식이라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옴니버스(Omnibus)란 독립된 여러 단편이 하나의 작품 안에 묶인 구성 방식으로, 서사의 연속성보다는 각 에피소드의 완결성에 집중하는 형태입니다. 이 때문에 piece는 본편의 서사를 보완하기보다는 별개의 스케치집에 가깝다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호리미야 원작 만화랑 애니메이션 중에 뭘 먼저 봐야 하나요?
A. 저는 애니메이션을 먼저 본 뒤 원작을 읽는 순서를 추천합니다. 애니메이션으로 두 주인공의 매력을 빠르게 파악한 다음, 원작에서 생략된 이시카와·요시카와의 서사나 세부 에피소드를 채워가는 방식이 훨씬 즐거웠습니다. 원작을 먼저 읽으면 애니메이션의 압축이 다소 아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Q. 호리미야 -piece-는 본편을 보지 않아도 이해가 되나요?
A. 솔직히 piece만 단독으로 보면 인물 관계가 낯설게 느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piece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스핀오프에 가깝기 때문에, 본편 13화를 먼저 시청한 뒤 보조 자료로 감상하는 게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본편의 감정선이 깔려 있어야 piece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더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Q. 호리미야가 청춘 로맨스 입문작으로 적합한가요?
A. 자극적인 갈등이나 삼각관계보다 잔잔한 일상 속 감정 변화를 좋아하신다면 굉장히 잘 맞는 작품입니다. 제 경험상 로맨스 애니메이션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 권했을 때도 거부감 없이 즐기신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만 이야기 전개가 빠른 편이라, 천천히 감정을 쌓아가는 전개를 선호하시는 분께는 원작 만화가 더 맞을 수 있습니다.
Q. 서브 캐릭터 이시카와나 요시카와의 이야기도 애니메이션에서 제대로 나오나요?
A. 아쉽게도 서브 캐릭터들의 서사는 본편 13화 안에서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시카와와 요시카와의 관계 변화 같은 경우, 애니메이션에서는 단편적으로만 등장하고 깊이 있는 감정선은 원작에서 훨씬 풍부하게 전개됩니다. 서브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원작 만화로 넘어가시는 걸 강력히 권장합니다.
결론
정리하면, 《호리미야》는 작화·연출·캐릭터성이라는 세 가지 축에서 청춘 로맨스의 모범을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서사 압축으로 인한 감정선의 생략이라는 뚜렷한 한계를 함께 안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원작과 비교해가며 본 결과, 애니메이션만으로는 이 작품의 감동을 절반밖에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민낯을 보고도 떠나지 않는 관계, 타인의 시선보다 서로를 먼저 보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보는 내내 마음 어딘가를 몽글하게 건드렸습니다. 청춘 로맨스 장르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애니메이션으로 입문한 뒤 원작으로 넘어가는 루트를 권장합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첫 화만 틀어보시면 자연스럽게 다음 화로 손이 가실 겁니다.